중국에서 '731' 이라는 영화가 개봉된 후 관람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주중 일본 대사에서는 중국내 거주 일본인들에게 안전을 당부하는 안내문을 돌렸고, 몇몇 일본인 학교는 휴교까지 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인간을 하나의 실험용 쥐로 다뤘던 일본 군부의 잔인함을 고발한 영화라고 하지만, 사실 당시에 731부대 외에도 어느 나라나 인간성을 상실한 끔찍한 살상은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유태인 수용소에서 유태인들 수백만명을 죽이고 생체실험까지 자행한 당시 독일군부를 비롯해 서로 효율적으로 상대편을 죽고 죽이는 데에만 골몰했던 당시 참전국 정부와 군부들 역시 731부대원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뿐일까? 시간대를 인류 문명이 처음 시작했던 시기까지 연장하면 기록되지도 않고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잔인하고 참혹하게 서로가 서로를 살해한 사건들은 무수히 많았을 것이고, 그렇게 오래, 멀리 가지 않아도 70년대 캄보디아 킬링필드나 베트남 전쟁에서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당한 채 무참히 살해당했다. 2020년대 와서는 비슷한 잔인한 학살이 러-우 전쟁에서도 발생했다.
자연을 개발하고 더 많은 영토와 자원을 확보하는 과정에선 필연적으로 갈등과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개척해야 할 지역을 더 효율적으로 탐사하고 점령하기 위해, 맞서 싸워야 할 적을 효과적으로 물리치기 위해 다양한 기술들이 개발되어왔고 이런 기술들은 결국 오늘날 지구를 몇 번이고 멸망시킬만큼의 강력한 무기들을 만들어내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오늘날엔 세계 각국이 평화롭고 공정한 방식으로 상품 서비스 경쟁을 벌인다고 하지만, 그것은 이상론에 가까울 뿐, 과거에도 그랬듯 현대의 국제 관계에서 세계 각국은 언제든 무력 충돌을 벌일 수 있다.
사회의 주류적 가치관은 이처럼 필연적으로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국제관계 뿐 아니라 국내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자산을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사회 주류의 욕망은 인간 사회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인류의 생존에 가장 크게 기여해 왔지만, 그만큼 그 반작용으로 쉽게 비인간적인 싸움을 일으키고 세상을 잠시도 숨을 고를 수 없는 끝없는 경쟁사회로 만든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완화될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인간 사회의 이면이다. 이를 부정하고 사회가 좀 더 인간다운 곳, 모두가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고 좀 더 평화와 평등을 추구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삶과 세상의 진실을 회피하고 외면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래서 사회 주류와 다른 가치관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 지나친 경쟁을 비판하고 인간성의 회복과 평등과 형평성을 주장하며 다소 현실과 먼 이상을 추구하고 예술이나 순수 학문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것, 맞서지 말아야 할 부분, 그리고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자기 가치를 추구하는 영역을 분명히 구분해서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결국 자기 스스로의 삶,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현실에서 끊임없는 고민과 내적 갈등을 일으키게 만드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평화로워 보이는 학교 생활도 알고보면 각자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그 어떤 전쟁터 못지 않게 사람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조용한 전쟁이 벌어지는 곳일 수 있다. 마음 편히 다니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학교를 벗어나 사회로 나온 후엔 이런 상황은 점점 더 심해진다. 물론 각 사회 조직의 구조적 특성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말 그대로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직장에서든 어디서든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시기 질투와 암투, 갈등이 벌어지고 아무 이유 없이도 서로 기싸움을 한다든지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려는 사람들로 인해 귀찮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조직이 있다면 그런 조직은 곧 경쟁에서 뒤쳐져 해체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가족 관계에서든, 고부 간의 관계에서든, 직장에서든, 심지어 종교 단체에서든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런 갈등과 스트레스에 대한 반감으로 주류 가치관을 공격한 결과가 바로 공산주의를 비롯한 수많은 이상주의 체제의 실패다. 주류 가치관은 사실 모두가 갖고 있는 것이고, 주류 외의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인데, 아주 드물게 주류 가치관이 아예 내재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태어나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로 종교 단체 지도자 중 매우 드물게 오로지 희생과 봉사만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자손을 낳지 않기 때문에, 후대로 갈수록 그 숫자는 점점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비주류 가치관을 갖고 태어나 주류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상처 받았거나 트라우마를 겪어서 피해의식에 사로 잡혀 있다면, 그로 인한 인생의 손실은 오로지 본인 스스로만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 사회는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으며,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세상이 온다면 그 세상은 얼마 안 가 심각한 부작용을 겪고 도태되어 사라질 수 있다. 주류의 가치관만이 지배하는 사회도 문제가 많지만, 비주류 가치관은 어디까지나 보조의 역할만을 할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로 인한 괴로움은 순전히 혼자만의 몫일 뿐이다.
그래서 태생적으로 비주류 가치관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삶이 이루어지는 영역과 장소가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난 독립된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공간을 찾거나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공간이 바로 독서 모임이나 취미 생활 모임, 토론 모임, 학문과 예술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해당 공간조차 현실과의 접점 없이 스스로 독립해서 지속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공간의 존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주기적인 모임,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들이 인정받고 꽃을 피우는 것은 비주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 그런 역할을 담당하던 곳이 바로 종교 집단이었다. 지금은 실험적으로 그런 공간과 모임, 공동체들이 여러 형태로 생겨났다 사라지고 하면서 각자 꾸준히 지속되고 생존할 길을 모색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