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의료인의 범위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 간호사,조산사로 한정되어 있지만, 이 글에서는 넓게 봐서 약사와 그 외 관련 업종에 속하는 모든 직업군을 의료인으로 부르기로 하겠다. 그동안 약사와 치과의사로서 다양한 곳에서 일해보고 개원이나 개국을 한 동기들, 선후배들을 보면서 여러 과 의료인들의 성향과 적성, 그리고 해당 의료인이 운영하는 사업체의 성과 등등에 어떤 독특한 특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특성은 어쩌면 의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특성일 수도 있다.
모두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돈 욕심이 많고, 인간에 대한 존중 같은 가치보다 금전적 가치를 더 중시하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과잉진료와 검증 안된 약 팔기 등등 환자의 이익과 어찌보면 반하는 행위들을 서슴없이 하는 의료인들이 성공할 확률이 매우 크다. 정형외과나 재활의학과에서 전혀 케이스가 아닌데도 도수 치료와 MRI 촬영을 처방해서 환자 실비로 메꾸기, 내과에서 마늘 주사라든가 별별 이름을 붙인 검증 안된 비급여 수액이나 무리한 검사등을 시행하기, 치과에서 굳이 치료가 필요하지 않거나 애매모호한 경우에도 과잉 치료를 권하기, 안과나 피부과 등등에서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다양한 시술을 권하기, 약국에서 충분한 임상 데이터가 쌓이지 않은 건강기능식품이나 일반의약품들 권하기 등등 수입을 크게 늘리기 위한 방법은 다양하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소위 '입을 잘 털어서' 환자에게 권하는 의료인들이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여기엔 한 가지 통계적 원리가 숨어 있는데, 저런 과잉 진료와 과잉 약 매매 등을 많은 사람들이 거부하지만, 또 저런 식의 권유에 홀딱 넘어가는 사람들이 통계적으로 늘 충분히 많다는 점이다. 즉 해당 의료기관들이 그런 식의 불필요한 의료와 투약 행위로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소위 말하는 그런 '호구 고객' 들의 심리를 잘 파악해서 그런 고객들을 자신들의 의료 기관으로 잘 끌어오는 전략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결국 호구 잡는 마케팅 능력이 핵심인데, 그런 마케팅은 알고보면 많은 투자와 관련이 깊다. 더 크고 화려한 규모, 더 많은 업무 인력 고용, 막대한 마케팅 및 영업 투자가 바로 그런 호구 고객들을 쭉 끌어들인다. 이른바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액수가 문제가 될 수는 있어도' 라는 말이 정확히 적용되는 것이 바로 이 의료기관 규모와 마케팅 판의 생리다. 목 좋은 곳 비싼 임대료가 필요한 위치의 상가 자리 역시 마케팅 비용에 계상시킬 수 있다. 그런 고객들이 쉽게 지갑을 여는 것은 마치 처음부터 정해진 순서도가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세상엔 자기 양심대로, 자신이 배우고 공부하고 연구한대로, 할 수 있는 것만 환자에게 권하고 환자를 위한 최선의 안을 연구하는 의료인들도 많다. 문제는 이런 의료인들은 대개 환자 입장에서도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최근 나는 손을 다쳐서 동네 재활의학과에 갔다. 척 보기에도 성실해 보이는 의사가 진료실에 앉아 있었다. 의사는 내 손 x-ray 영상을 보여주며 매우 꼼꼼히 여기는 어떻고 저기는 어떻고 자세히 설명해주며 뼈에 금이 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혹시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 있으니 x-ray에 나오지 않는 부분을 알기 위해 초음파를 보자고 한다. 그래서 초음파도 봤는데 역시 초음파 내용을 설명하며 '뼈에 금이 가지 않았다' 가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 봐도 뼈에 금이 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라고 애매모호하게 말한다. 그리고 통증이 있으면 일주일 후에 오라고 말해 주었다. 아무 추가적인 처치도 없었고 보험료 12,000원 정도만 나왔다. 그냥 들어도 이 의사의 이런 태도는 굉장히 자신없고 실력 없어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 사실 이 의사의 설명은 x-ray와 초음파로 분석해낼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설명이었고, 일주일 후 증상을 통해 더 알아보자는 것 역시 현 시점에서 가장 최상의 처치였다. 우선 내가 진료를 받은 그 시점에 해당 자료로 그 이상을 알아내기란 어려우며, 더 복잡한 검사를 하는 것 보다는 붓거나 통증이 심하지 않는 한 기다려 보는 것이 또한 가장 정확한 진단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한 심한 염증이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약 처방조차 하지 않았는데 그것 역시 정답에 가깝다. 심하지 않은 염증은 그냥 우리 몸이 알아서 치료하게 놔두는 게 더 효과적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말빨이 좋은 의사는 아마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아하, 조금 의심이 갑니다만 큰 탈은 없을 겁니다. 근데 확실히 낫는게 중요하기 때문에 물리치료와 주사 치료 가죠. 줄기세포 주사 어쩌구가 필요하겠죠.' 그러면서 비보험 진료를 스윽 끼워 넣는 것까지. 보통 이런 사람들은 매우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목소리로 말하기 때문에 호구 환자는 보다 큰 '안심과 신뢰'을 보이며 기꺼이 치료에 응하고 지갑을 연다.
노파심에 또 말하는 거지만, 이런 식으로 말하고 처방하는 모든 의사가 사기꾼이나 과잉진료를 했다는 게 아니다. 분명 그런 치료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또한 양심적으로 의료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성공하지 말란 법도 없다. 다만 지금처럼 극심한 마케팅 경쟁 시대, 자본주의의 원리가 의료에 깊게 파고든 시대엔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 또한 애초에 그런 사람들은 물질적 성공에 대한 욕심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의료업에 종사한다 해서 모두가 물질적 유인으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환자들을 많이 본 의료인이나 직원들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호구 고객'을 보는 눈의 정확도가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고, 어떻게 그들을 구워 삶아서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게 만드는지 숙달되는 것도 사실이다. 복잡한 마케팅 메커니즘을 통해 들어온 고객들일수록 더 쉽게 호구처럼 불필요한 진료에 돈을 쓰는 것도 맞고, 그런 고객들이 대형 약국 등에서 그럴듯해 보이는 분위기와 약사들의 권유로 쓸데없이 더 많은 약과 건기식을 살 가능성이 높은 것도 맞다. 복잡하고 비싼 마케팅일수록 그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훨씬 어렵다.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병의원 약국들을 검색하면서 좀 더 끌리는 곳들이 어딘지 찾아 보라. 장담하건데 가장 마케팅을 잘 하고 여러가지 투자를 한 곳이라 그만큼 더 많은 진료를 권유하는 곳일 것이다. 황당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마케팅으로 들어온 환자들일수록 자신을 더 드러내기 좋아하기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좋은 댓글들을 달며, 더 많은 과잉진료를 받을수록 그렇게 댓글을 달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나기 대문에 더 많은 과잉진료는 곧 더 좋은 평가로 이어지게 된다.
사업가적 자질을 갖고 쉽게 쉽게 과잉진료와 과잉수술과 시술, 과잉투약을 권하는 의료인들이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빨리 의료기관 확장을 통해 수입을 극대화시키는 사실은, 실은 다른 분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것은 한편으로 국민들이 의료인에 대해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의료인들 역시 자체적으로 이 문제를 공론화 하기도 싫어하고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은 매장만 당할 뿐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런 성공 사례를 수집해서 자신의 의료기관을 더욱 크게 확장하고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어한다.
그럼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글쎄, 그런데 엄밀히 말해 그런 부분은 의료 정책을 만들고 전체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람들이 고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냉정해 보이지만 이런 문제는 개개인의 양심이나 교육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의료기관을 창업하고 수익을 얻고 규모를 확장하는 모든 과정과 그에 얽힌 이윤 동기가 다른 모든 기업이나 자영업 등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서 발생하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즉, 기업과 자영업에서 더 많은 물건과 서비스를 팔고 더 많은 투자를 하고 비용을 줄일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원리가 의료기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 사이에 양심과 교육의 효과가 이를 막을 여지가 전혀 없다. 진심으로 환자를 위하는 진료를 하면 할수록 의료 시장은 축소되고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는 모순적인 원리가 이 시스템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의료 단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의료 정책을 만들고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정부나 관련 공무원들의 탓도 아니다. 의료의 특수성 중 하나인데, 어쨌든 아픈 사람들이 늘고 더 많은 의료 수요가 발생할수록(그것이 과잉이든 불필요한 의료 행위라도) 의료와 제약 기술도 더 많이 발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더 많은 의료 서비스를 더 저렴하게 더 많은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모순적인 의료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알려진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환자 부담금은 엄청 높고 제약회사들의 로비력이 왜곡된 진료와 투약을 유발하며 국민들이 의료비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나라지만, 그 덕분에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술과 약이 개발되는 곳이기도 하고, 그로 인해 우리같은 다른 나라들의 국민들이 덕을 보고 있다. 과잉진료를 하든 과잉 투약을 하든 어쨌든 의료 시장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만큼 의료기관들이 늘어나고 더 우수한 인력들이 의료 현장으로 투입되어 현명한 고객들은 더욱 이득을 보는 것이 의료 현장의 현실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의료 분야에서는 호구 고객들 덕분에 의료 시장 전체가 지탱이 되고, 그 덕분에 현명한 환자들이 이득을 볼 수 있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혹시 병의원이나 약국에 갔는데 무리한 진료처럼 보이는 '비싼 처치'를 은근 강요하는 느낌이 들은 적이 있는가? 일단 멈추고 좀 더 생각해보고 오겠다고 말했다면, 당신은 현명한 환자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이고, 진단은 대개 보험 범위로 모두 커버된다. 제대로 진단을 받았다면 응급 상황이 아닌 이상 치료는 좀 미뤄도 상관이 없다. 정말 응급한 상황, 즉 응급 의료는 심지어 전부 보험에 속하기도 한다.
의료 분야의 이런 모순적인 상황은 한국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들이 겪고 있는 면이며, 어떤 관점에서 볼 땐 한국이 그나마 가장 덜한 곳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글을 읽고 불편한 생각이 들었다면 어쩔 수 없지만 현실이다. 현대 의료 산업은 결코 낭만적인 분야가 아니며, 내 몸을 맡기기 위해 신뢰할 것은 의료인 개개인이 아니라 시스템과 제도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상인 말을 믿을 필요 없다고 하는 뉘앙스의 말이 있는데, 그렇다고 모든 상인이 사기꾼은 아니며 정직한 상인들도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상인이 사기를 치지 않고 정직하게 일하게 만드는 것은 시스템과 제도다. 식품 위생 관리라든가 소비자 보호와 관련된 수많은 법과 제도 등등. 마찬가지로 세상엔 얼마든지 정직하고 자기 양심을 지키고 환자를 위하는 의료인들도 많지만, 현 제도와 시스템하에서 그런 의료인들을 환자들이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문제는 의료인들의 주장처럼 정부 탓만이 아니며, 어찌보면 제도와 시스템을 당장 수정해서 될 일도 아닐 수 있다. 의료인들을 대신할 AI와 로봇 기술이 더 발전하면 조금씩 해소될 수 있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