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때 슬램덩크를 재밌게 봤던 사람들에게 기억나는 명장면을 떠올리라고 하면 보통 이 컷 씬 어딘가를 떠올릴 것이다. ('포기하면 편해'라는 컷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는데 그 장면은 대사를 바꾼 것이다) 모두가 이 씬을 떠올리는 것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진심으로 좋아하는 느낌' 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혹 몸이 힘들거나 때로 고통이 느껴지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 영원히 머무르고 싶다는 느낌, 무엇인가를 향해 달려가긴 하지만 꼭 그 목표만이 전부는 아닌 그런 느낌. 어쩌면 이노우에 작가가 슬램덩크 만화에서 가장 공들여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단순히 승리라는 목표 하나만이 아닌, 모두가 하나되어 달려가는 그 순간 가슴 속에서 터질듯이 솟아오르는 수많은 감정들과 감각들, 그것을 절절히 표현하기 위해 앞의 긴 스토리가 필요했던 것.
미시간대학 신경과학 석좌교수인 켄트 베리지 박사는 우리 뇌에서 '원함' 과 '좋아함' 이 각각 다른 부위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밝혀냈다. 평생을 중독 연구에 몰두한 켄트 박사에 따르면, 흔히 말하는 도파민 보상회로는 쾌감 그 자체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쾌감을 기대하고 예측하게 만드는, 즉 '원함' 을 일으키는 회로이며, '좋아함', 즉 특정 감각 자극이나 행동을 통해 느껴지는 기쁨과 즐거움은 '원함'과는 다른 메커니즘을 통해 일어난다고 한다. 이 때 이 '좋아함'을 조절하는 뇌의 부위는 '원함'을 조절하는 부위보다 다소 작고 취약한 성질을 가지며, 사람마다 다르지만 쉽게 피로해지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즐거움과 기쁨을 같은 강도로 느낄 수는 없다. 또한 '좋아함'의 느낌을 조절하는 부위가 이렇게 따로 있긴 하지만, 그로 인해 느껴지는 전반적인 만족, 기쁨, 행복은 뇌의 여러 군데에서 일어나는 통합적인 프로세스에 해당한다. 이 때 세로토닌, 옥시토신, 오피오이드, 엔도카나비노이드 등 여러 행복 호르몬들이 관여한다.
현재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것, 더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고 기대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도파민 회로의 역할이다. 이것은 '원함'을 일으키는 회로인데, 이 때 '원함' 에는 '지금 하는 프로젝트를 완성해 내고 싶다' '저 상품을 손에 넣고 싶다' 라고 머리 속 생각으로 뚜렷하게 인식하는 것도 있지만, 앞에 있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과 아름답고 멋진 이성을 볼 때 자기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무의식적 욕구도 있다. 이 두가지는 서로 영향을 줄 때가 많은데, 어떤 것이든 '원함' 과 '좋아함'은 별개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연구에 따르면 도파민 회로를 더 활성화시키거나 도파민의 양을 실제로 늘리면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실제로 즐기고 좋아하는 데엔 아무런 영향도 없다고 한다. 즉 '원함'은 말 그대로 해당 목표와 대상을 이루거나 손에 넣으면 '그러면 엄청 즐겁지 않을까?' '그러면 너무 신나지 않을까?' 라는 기대만 증폭시킬 뿐 실제로 그것을 이루고 손에 넣었을 때 느끼는 즐거움과 기쁨에는 별다른 영향을 못미친다는 뜻이다. 다만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실제로 맛있다고 느끼고 즐거움을 느껴야 다음에 똑같은 음식을 볼 때 그만큼 즐거울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되므로, 도파민 회로는 이처럼 즐거움을 일으키는 행동을 기억하고 학습하는데 관여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원함'만 가득한, 즉 도파민 회로만 과활성화된 상태이다. 끊임없이 자극적인 영상을 보거나 단기적이고 강한 쾌락을 자주 찾는 경우,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자주 받는 상황은 뇌 속 도파민 회로를 과활성화시킨다. 이는 결과적으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 보다 저 어딘가에 지금의 현실을 잊게 해줄 더 그럴듯하고 멋진 무엇인가가 있다고 끊임없이 착각하게 만든다. 현재에 머물지 못하고 미래 어딘가에만 의식이 머물면서 늘 먼 목표와 구원 대상에만 집착하게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그 원하는 것을 손에 넣거나 이루어도, 기대했던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도파민 과활성화 자체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현실적이지 못한 기대'를 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 상품을 얻으면, 저 자리에 오르면, 저 사람과 함께하면 내 인생이 나아지고 행복해질거야' 라는 기대 자체가 도파민 과활성화가 만들어낸 착각이라는 의미다. 심지어 어떤 연구에서는 도파민 과활성화가 현재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켄트 베리지 박사가 말하는 약물 중독 상태가 이와 유사하다.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은 어차피 쾌감 보상 회로가 망가져 있기 때문에 해당 약물을 계속 복용해도 결코 온전한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약물 자체로 도파민 회로를 과활성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저 약물을 하면 지금의 괴로움을 잊고 모든 것이 해결될거란 기대를 하게 만든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잠시동안 평온할 수는 있겠지만 다시 괴로움으로 빠져들 뿐이다. 마찬가지로 현재에 머무르지 못한 채 먼 미래, 내가 현재 갖지 못한 것만 추구하는 도파민 과활성화 상태에서는 원하는 그 모든 것을 얻는다 해도 결코 기대만큼의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이런 상태에서 원하는 것들을 실제로 얻게 되어도 기대한 만큼의 즐거움을 결코 느끼지 못하니 공허와 허무함만 커진다. 한마디로 '원함' 만 가득한 채 '좋아함'이 사라진 상태라 할 수 있다. '좋아함'은 기대했던 목표나 성취를 이루지 않아도, 지금 하는 행위 자체로 느끼는 편안함과 기쁨을 뜻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나의 행복 회로를 실시간으로 돌려줄 무엇인가가 없다면, 그 어떤 기대나 목표도 공허할 뿐이다. 과정을 즐기지 못하는 목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은데, 목표 하나만을 향해 현재를 희생하며 달려가는 것 자체가 도파민 회로 과활성으로 인한 착각이 일으키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즉 그 목표를 이루면 현재의 고통과 희생을 모두 보상받을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그런 삶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신기하게도 공포를 유발하는 신경 회로 역시 '원함'을 일으키는 회로, 즉 도파민 보상회로와 겹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스트레스와 불안이 지속되면 도파민 과활성화 상태가 지속된다. 이는 아마도 스트레스와 불안 때문에 지긋지긋하고 괴로운 현재를 벗어나 저 어딘가 유토피아로 탈출해야 한다는 기대감을 집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좋아함' 회로가 쉽게 망가지고 '원함' 회로가 쉽게 과활성화되는 사람이 따로 존재하는데, 예민하고 쉽게 불안을 느끼는 성향의 사람들이 역시 이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좋아함'과 '원함' 모두 의식적인 노력에 의한 부분보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 말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좋아하는 것을 싫어할수도 없다는 뜻이다. 다만 억압만이 가능할 뿐인데, 욕망이든 고통이든 억압을 하면 언젠가는 다른 변형된 형태로 폭발하게 되어 있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물고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필요하긴 하지만 단순히 마음을 고쳐 먹는 노력만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물론 인생을 살면서 싫은 것들을 피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은 스스로 인지할 필요가 있다. 나는 저게 싫지만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가까이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슬램덩크 만화의 캐릭터들 중 많은 사람들이 강백호를 좋아하는 이유는, 강백호가 바로 작가의 분신이자 작가가 가장 원했던 삶의 모습을 사는 친구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만화 속 강백호 캐릭터는 처음에 그저 겉멋으로 농구를 시작했지만, 결국 끝에 가서 수단으로서가 아닌 농구 그 자체를 즐기게 된다. 하지만 그 씨앗은 결국 어떤 이유에서든 강백호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농구의 어떤 부분을 진심으로 좋아했다는 점이었다. 결국 그것을 발견해 마음껏 즐기는 과정이 길었을 뿐.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은 결코 복잡하게 살면 안되고 단순하게 살아야 하는 것 같다. 마음이 끌리는 것을 찾아 그냥 그 자체를 지금 이 순간에 누리는 것, 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