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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시대가 가진 양면성

Written on 2025-11-30

최근 공영방송의 위기를 다룬 언론 기사들이 간간히 보인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더이상 방송 시간에 자신의 시간을 맞추지 않는다. 수많은 미디어 플랫폼과 쏟아지는 유튜브 콘텐츠들 속에서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보고 싶은 콘텐츠를 보고 싶을때 혼자 조용히 본다. 플랫폼들의 알고리즘은 사람들 각자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끊임없이 선별해서 추천해주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더이상 자기 취향이 아닌 것들을 볼 기회(?)조차 없다. AI의 발전은 사람들이 스스로 보고 싶거나 학습하고 싶은 것들을 더욱 잘 찾아줄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현상은 점점 더 가속화될 것이다.

어떤 면에선 개인에게 축복인 상황이다. 사람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시간에 맞게 원하는 것들을 보고 읽고 듣고 즐기고 학습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집이든 카페든 어디든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신과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콘텐츠들을 즐기고 학습하고 콘텐츠 제작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

과거 인터넷이 대중화되지 않았거나 아직 컴퓨터로만 연결할 수 있던 시절, 개인화 콘텐츠라는 개념은 희미했다. 공영방송 드라마들은 시청율 수십%를 찍곤 했으며 인기 있는 드라마의 최대 시청률이 60프로를 넘기도 했다. 저녁이 되면 가족들이 티비 앞 소파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며 함께 드라마와 뉴스를 시청하는 것이 일상인 집이 많았다. 다음날 학교와 직장에 가면 친구들 직장 동료들과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나눴다.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 그러면 안된다느니 둘이 분명 사랑하는게 맞다느니.. 언론도 함께 드라마 속 이야기에 대한 상반된 의견들을 실으며 전국민적인 드라마 후속 토론(?)에 열기를 불어 넣곤 했다. 전 날 뉴스에서 나온 굵직한 사건들도 다음날이 되면 모두가 알게 되니 서로 친하지 않은 사이라도 시사 뉴스 이야기로만 한참동안 스몰 토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그 속에서 각자의 취향에 맞는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콘텐츠들만을 본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뉴스꺼리도 관심이 없으면 볼 일이 없다. 알고리즘 때문에 콘텐츠 소비자들은 마치 자신이 보는 콘텐츠들이 세상에 유행인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내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자주 보는 채널이나 콘텐츠 제작자, 방송인들의 이름조차 못들어본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명 유튜버들이나 인플루언서들이 많긴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런 사람들의 콘텐츠를 단 한 편도 안 본 사람도 많다.

가족끼리도, 친구나 직장 동료처럼 비슷한 공간이나 취향, 일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두터운 벽이 있기 때문에 서로의 세계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언뜻 대화가 통하는 것 같아도 관심사가 너무 달라 적당히 공감하는 척만 하는 경우도 많고, 오랜 시간을 함께 했어도 서로의 취향을 이해 못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자기 세계를 구축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축복의 시대지만, 가까운 사람들과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고 함께 공감대를 만들며 같은 공동체에 소속되었다는 느낌을 누리고 싶은 사람들에겐 다소 외롭고 고독한 시대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모임이나 조직, 공동체의 단점도 많았지만 장점도 있듯이, 지금 시대의 이같은 흐름 역시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분명 존재한다. 이제 사람들은 서로 친해지기 위해 공감대를 찾고 서로의 취향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기 보다는 그냥 어딘가에 있을 자기와 비슷한 취향과 말할 꺼리들을 가진 사람들을 찾는게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회 활동도 많이 하고 이런 저런 모임도 많이 나가지만,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는 이유는, 어차피 그 속에서도 미세하게 취향이 갈리고 각자의 세계가 이미 견고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독서 모임이나 명상 모임에서, 혹은 직장이나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과거와 다른 어떤 이질감을 자주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점점 더 그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해 상대의 말을 최대한 들어주고 내 주장을 아끼거나 늘 반론의 여지를 남기면서 말하게 되더라. 예전엔 누군가 목소리를 높이거나 권위있는 태도로 강한 어조로 말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척이라도 하곤 했는데, 이제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들 자신의 세계가 뚜렷해진 만큼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 취향을 피력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사람들의 적응력과 대처능력도 그만큼 뛰어나기 때문에, 지금 시대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단점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다시 또 시대가 나아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자기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도 남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세상은 꾸준히 과거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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