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미래에 AI와 로봇은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그로 인해 세상이 엄청나게 변할 것이다' 등등의 말은 그냥 한참 나중의 일처럼 느껴졌다.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나 이와 같은 대화를 나눠봐도, 뭐 딱히 업무나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별로 없었고 그냥 그동안 해오던 일이 조금 더 편해졌다는 정도의 변화만 있다 정도였다. 각 분야의 사람들 모두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해야 하는 거라 결국 다 변화에 적응할 거고 언론이나 소셜 미디어 여기저기서 떠드는 것처럼 큰 변화가 나타날 것같지는 않다, 라는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 AI와 로봇의 한계도 아직은 명확해 보이던 때였다. 그런데 올해들어 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올해부터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AI, 놀라운 성능을 보여준 중국 기업들의 로봇 영상들, 아직 인과관계 분석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AI로 인해 기업들이 고용을 줄이고 대규모 해고를 시작했다는 뉴스들이 나오면서..
예전에 기본소득 이야기가 한참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미래엔 어차피 AI와 로봇이 생산을 담당할테니 사람들은 기본 소득을 받으며 창의적 활동을 통한 기술적, 예술적 창조 활동에 전념하자는, 대충 그런 의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실은 예측 못한 것이 있었다. 현재까지 나온 AI의 수준만 보더라도, AI가 이 정도까지 창의적인 생산물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AI가 고지능적, 고차원적인 창조 능력까지 대체할지 모른다는 공포감마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더해 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면, 민주주의 자체가 생산 능력을 가진 국민들의 존재를 전제로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시장에서 돈으로 거래될 수 있는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능력이 소수의 기업이나 정부에 집중될 경우 자연스레 독재 정권이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사실상 독재 체제나 다름 없는 러시아, 중동, 남미, 동남아 국가들의 공통점이다. 과거 흑인이나 여성 해방 운동 역시 갑자기 사람들이 깨우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산업 구조가 변하면서 흑인과 여성 모두 경제 활동에 적극 참여하면서부터 나타난 일이었다. 또한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창의적, 창조적 활동 보다는 수동적, 소비적 활동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살아간다는 것 역시 지적할 수 있다. 애초에 국가로부터 다수 국민이 기본 소득을 받는 체제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권력이 국가 기관에 집중되는 결과를 낳게 될 뿐이다. 그렇다면 AI와 로봇 발전이 지금처럼 급속도로 인류의 노동력을 대체할 미래는 필연적으로 디스토피아가 될까?
과거 산업 혁명 시절의 다양한 기술 발전이 수없이 많은 산업과 직업을 파괴했지만 결국 그보다 더 많은 다양한 산업을 일으키고 새로운 직업들을 만들어 냈듯, AI와 로봇 발전으로 인한 미래 역시 비슷한 변화를 겪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문제는 제도와 정책 변화의 속도, 그리고 각자가 얼마나 더 민첩하게 시대 변화의 흐름을 읽고 이에 대응하는가이다. 분명 시대 변화 과정에서 창조적 파괴가 여러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고, 누군가는 이 흐름을 잘 읽고 새로 잘 적응하겠지만 누군가는 변화에 뒤쳐질 수 있다.
그에 대한 근거는, 결국 중요한 것은 AI와 로봇이 대체할 현재의 노동력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이 결핍된 것, 채워지지 않는 것, 강한 욕구와 욕망을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데서 출발한다. 즉 농경 사회에는 먹고 사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쌀밥과 고깃국 정도가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생산물이었지만, 먹을 것이 넘쳐나는 지금은 쌀밥과 고깃국의 부가가치는 한없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과거 사람들은 옷이나 문화 생활에 거의 돈을 쓰지 않았지만 현대인들은 옷, 문화 생활, 여행을 비롯한 각종 경험에 엄청난 돈을 쓴다. 기술 발전과 전반적인 경제적 풍요로움이 사람들의 욕구와 욕망을 계속해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AI와 로봇이 인간보다 더 생산력이 높다는 말이 뜻하는 정확한 의미가 무엇일까? 현재 사람들이 돈을 많이 주고 사용하는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들이 AI와 로봇으로 인해 헐값으로 내려가면서도 그 품질은 더욱 좋아질 것이란 뜻이다. 즉 일상 용품, 수많은 가사일, 택배와 배송,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생활에 필수적이면서 여전히 많은 비용이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들은 점점 더 생산량도 늘고 품질도 늘며 가격 또한 내려가게 되면서, 앞으로는 점점 더 적은 비용으로 그런 상품과 서비스들을 차고 넘치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마치 과거 사람들이 온종일 일해도 얻기 힘들었던 쌀밥과 고깃국을 지금은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처럼.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욕구와 욕망 자체도 대폭 이동하게 된다. 한마디로 지금 사람들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이용하는 상품과 서비스들에 대한 수요 자체가 줄어들면서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최근 AI로 인해 영상 제작 업무, 문서 작업 업무, 개발 업무 등등이 지속적으로 대체되고 있으며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일자리가 위험하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그러면 그런 일들은 앞으로 AI가 대체하겠지만 또한 그런 업무들로 만들어질 상품과 서비스들 역시 시장에 넘쳐나서 가격이 내려갈 뿐 아니라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그저 공기처럼 여기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앞으로 지금과 같은 영화와 드라마, 유튜브 영상등등은 점점 더 쉽게 많이 제작되면서 단가가 내려갈 뿐 아니라 사람들 역시 피로를 느끼며 흥미와 수요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 대신 어쩌면 앞으로는 그런 영상에 출연했던 유명 유튜버, 연예인, 아이돌들과 직접 만나 교류하는 컨셉의 오프라인 서비스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지금은 연극이나 뮤지컬이 인기가 없지만, 조금만 더 접근성을 높이고 비용을 낮춰 그에 맞는 형식으로 만든다면, 지금의 연극과 뮤지컬처럼 한 공간에서 연예인들의 공연을 즐기는 문화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 아마 점점 더 지금과는 다른, 여러가지 형식으로 방송인들과 팬 혹은 관객들이 한 공간에서 만나 어울리는 문화 상품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이것은 매우 작은 한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AI와 로봇이 현재 사람들의 일을 대체하면서 해당 기업이 그로 인한 수입을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일에서 생산되는 상품과 서비스들이 공기처럼 흔해지면서 가격도 낮아진다는 뜻이다. 아마존이나 메타 등 여러 기업들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로봇와 AI로 대체하면서 판매 수익을 독식한다? 오히려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매출은 점점 더 줄어드는 상황을 걱정해야 할 수 있다. 새로 나타날 스타트업들은 점점 더 쉽게 기존의 대기업들이 AI와 로봇으로 만들어내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낼 것이고, 그 가격은 마치 지금 사람들이 사용하는 앱이나 수많은 인터넷 서비스들에 거의 돈을 지불하지 않는 것처럼 제로에 가깝게 수렴될지도 모른다.
그대신 사람들은 점점 더 '인간만이 제공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 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할 것이고, 그런 직종들에 더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인간의 욕구와 욕망들 - 정신적 / 신체적 사랑을 나누고 싶은 욕구, 다른 사람들 속에서 인정 받고 싶고 사회적 교류를 하고 싶어하는 욕구, 여행에 대한 수요, 사람을 직접 만나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대면 서비스들, 젊음에 대한 욕구, 더 신선하고 고급스러운 식재료로 만든 음식에 대한 욕구 등등을 어떻게 채워줄 것이며 그런 것을 채울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어떤 식으로 만들어 제공할 것인가? 이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해야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 대해선 쉽게 말하기 힘든데, 그 이유는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불가능한 것도 많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매력적인 이성에 대한 성욕과 애정욕은 매우 중요하고 인류가 존속하는 한 영원히 지속될텐데, 지금처럼 실시간 채팅이나 성인물 영상으로가 아닌,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더 진화된 형태의 상품과 서비스가 나타날 수 있다. 현재 연예인이나 모델, 여러 미디어 작업들이 AI로 대체되고 있는데, 사람들은 더이상 그렇게 AI가 만들어낸 영상과 미디어 작품들에 흥미를 두지 않을 것이며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방식으로 매력적인 연예인, 모델들과 직접 만나 교류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찾게 될 것이다.
앞으로 의료 기술이 더 발전하고 의료 기술들 자체의 안전성도 확보되면서 더 많은 의료인들을 뽑아야 할 사회적 필요가 발생할 수 있다. 사람들은 점점 더 건강, 항노화, 피부 미용 등등에 많은 돈을 지불하려고 할 것이며, 최근 피트니스 관련 산업이 커졌듯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 몸을 가꾸는데 아낌없이 돈을 쓰게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관련 인력들도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수준으로 필요해질 수 있다. 이는 바이오 관련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더 촉진시키는 측면도 있을텐데, 따라서 지금 정부가 고민해야 할 것은 필수 의료 인력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 농담처럼 말했지만 나중엔 의대 정원이 1만명도 필요할 수도 있다. 핵심은 '의료인' 이라는 직업이 아니라 해당 시술과 처치를 할 수 있는 자격과 면허인데 이런 자격과 면허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점점 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AI와 로봇이 아무리 발전해도 해결 못하는 일들은 충분히 많다. 최근 지속적으로 싱싱한 바다 해산물들이 줄어들고 있다. 그와 동시에 고급 해산물들, 킹크랩이나 랍스터, 대게 등등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수요는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까? 더 싱싱한 과일과 채소, 고기에 대한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날텐데 아무리 AI와 로봇이 발전해도 이같은 농업기술 발전을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동안 사실 이런 식재료 상품들이 무시당해온 측면도 있으며 고급 인력들이 이런 쪽을 거들떠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는 더 많은 인재들이 이런 쪽의 연구로 눈길을 돌리지 않을까?
결국 핵심은 다시 또 사람이다. 사람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결국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 쪽으로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조정해갈 것이다. 그래서 AI나 로봇이 사람들을 실업자로 만든다 - 이것은 잘못된 예측이고, 그저 앞으로 새롭게 떠오를 좀 더 '인간적인 산업' 에 어떻게 진출할 것인가, 그것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