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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맞는 길

Written on 2025-12-08

어처구니 없는 잘못을 저질러 감옥에 간 전직 대통령들, 권력을 취했으나 내부 배신 혹은 반대 세력에 의해 축출된 독재자들, 무리한 영토 확장과 전쟁으로 결국 패가망신한 권력자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것. 세상 모든 사람들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모든 면에서 뛰어날 수는 없으며, 특히 어떤 능력이 뛰어날 경우 남들보다 취약한 부분 역시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현대 기업 조직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결코 한 명의 경영자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하지 않으며 지배구조나 조직의 책임, 권한 구조를 분산시키는 전략을 쓴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권력자는 이같은 인간의 한계, 스스로의 한계를 인지하지 못한채 자신의 그릇을 넘는 실수를 저지르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독재자, 권력자라는 거창한 자리에 오른 사람의 이야기에 불과한 것 같지만,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알고보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독재자, 권력자에 속한다. 생물학적 관점으로 보면 나 자신이 인지하고 지각하는 모든 것이 나의 세계를 구성하고, 내 생명이 끝나면 세상 전체가 사라지는 것과 같으며, 나는 심지어 그 세계를 스스로 없애버릴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권력자들이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인생을 운영해 나가는 데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일본과 독일의 군부는 자신들의 역량, 그리고 국가의 역량을 뛰어넘는 짓을 하는 바람에 전쟁에서 크게 패할 뿐 아니라 자국민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고 스스로를 파멸시켰다. 자신의 분수, 자기 그릇을 넘는 짓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나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여러 환경과 조건들의 한계를 무시하고 과도한 욕심을 부릴 때 내 몸과 마음이 끊임없는 고통과 고민, 좌절과 공허 속에 빠뜨리는 것과 같다. 전자는 자국민을 말살시키고 후자는 내 몸 여기저기 - 뇌를 포함해서 - 에 염증과 상처의 흉터를 남긴다. 그런 고통이 한계를 넘는 경우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몸과 마음이 망가지면 현명하고 합리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지기 마련이다.

다만 모두가 자기 그릇과 분수에 맞게 자기 길을 찾는 그런 삶을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그릇의 경계가 불분명한 사람들, 한계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타고나길 여러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신체와 정신도 무척 튼튼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세상을 더 넓히고 발전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스스로가 감당 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며, 거창하게 가지 않아도 주변에서 그렇게 조금 무리해서라도 리스크를 걸면서 여러가지 성취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혹 그로 인해 스스로의 몸이나 마음이 고통스럽더라도 그 덕분에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이득을 본다면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문제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훨씬 여리거나 부서지기 쉬운 타입의 사람들이다. 사회는 성취 지향적, 경쟁을 선호하는 주류에 의해 삶의 방향성과 가치가 셋팅되기 마련이다. 더 높은 자리, 더 넓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능력, 더 많은 소득과 자산, 더욱 경쟁적으로 성취한 성과들을 최고의 가치이자 모두가 추구해야 할 인생의 방향성인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주류 사회가 그런 식으로 가치를 셋팅해놓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길에 참여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국가 전체의 발전부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 한 사람의 입장에서 반드시 그런 가치와 방향성을 따를 필요는 전혀 없다.

나 역시 한 때 당연히 나도 성취 지향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여긴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방향으로 작은 한 걸음만 내딛으려고 해도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괴로움은 수많은 고민과 고통만을 내 몸에 새기게 될 뿐 아니라 내 영혼을 탈진시킬 뿐이라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내가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은 현대 사회가 제공해준 산소 호흡기 덕분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영아 사망률, 어린이 사망률이 꽤 높았을 뿐 아니라 평균 수명이 40도 안됐었다. 그동안의 의료와 보건 위생의 발전, 발전된 삶의 환경 개선 덕분에 과거 였으면 일찍 사망했을 사람들 모두 생존할 수 있었다고 가정해 보면, 어쩌면 나 역시 그런 부류에 속했을 수도 있었다. 주류 사회의 가치와 방향이 내게 맞지 않는 것도 어쩌면 현대 사회의 이기에 의해 삶을 연명하고 있는 것의 부작용 같은 것일 수 있다. 즉, 애초에 경쟁과 성취지향적인 삶과 맞지 않는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일찍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르는 나를 현대 사회의 발전된 문명과 기술이 계속 살아있게 했다는 의미다.

그런 관점으로 생각하면, 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도 감사할 뿐 아니라 치열하게 경쟁하고 성취하는 세상의 다수 주류 사람들에게도 또한 기꺼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매 순간 주변국들의 군사적 동향을 살피며 긴장하는 국방부와 군인들, 끊임없이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는 기업가와 정치인들 덕분에 내가 오늘도 안전하게 살아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아래로 내려오기 마련인데, 만약 오늘 우리가 직장에서 누군가 밉상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길에서 혹은 사회 모임에서 해코지를 당했다면, 그 원인은 결국 이 세상을 더욱 발전시키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 대신 열심히 뛰는 누군가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질수록 이 세상은 전쟁터이거나 혹은 지옥에 가까울 수 있는데, 이는 끊임없이 먹고 먹히며 죽음이 일상인 자연 생태계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 본성이 동물인 사람들의 사회라고 달라야 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내 삶에, 그리고 세상에 감사하기 시작하면 비로소 그 때부터 나의 분수, 나의 그릇을 알고 나에게 맞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세상에 나에게 꼭 맞는 자리나 길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수 있는데 사회는 나같은 사람이 아닌, 주류를 위한 자리와 길만을 마련해두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주류의 입장에서 불완전한 존재인 나는 사회가 마련한 수많은 자리와 길 중 그 어떤 것에도 흥미가 가지 않더라도, 그 어떤 것도 자신과 맞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더라도 실망하거나 스스로 자책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방인이나 다름 없는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축복이자 행운이다. 하다못해 북한을 비롯해 세계 수많은 분쟁 지역과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애초에 내 자리가 없는 곳이니 사회에서의 내 역할과 자리를 찾고 경쟁 속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아둥바둥 살 이유가 없다. 그것은 모두 주류 사회와 잘 맞는 다른 사람들이 할 일이다. 대신 그만큼 나는 내 삶의 범위를 축소 시키고, 괜히 남의 것 - 즉 주류가 추구하는 것들 - 을 탐하지 않는다는 마음 가짐으로 사는 것이 편하다. 애초부터 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은 생존해 있는 것도 기적일 수 있는데 내 것이 아닌 것까지 탐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그동안 나와 비슷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무수히 보고 깨달은 것은, 최근의 학계 연구들과 일맥 상통하는 면이 있다. 아직 연구 중에 있긴 하지만 세상엔 보다 여리고, 상처 받기 쉽고, 예민한 사람들이 많으며 그 정도 역시 다양할 뿐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는 그 정도를 짐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그럼에도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기에게 꼭 맞는 길을 걷는 사람들에겐 탄탄한 안정감과 카리스마, 그리고 사람 자체의 매력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류 사회는 형식만 바뀌었을 뿐 계급 사회였고 사람들은 사회적 계급 뿐 아니라 수많은 조건들로 서로 비교하고 질투하거나 무시하는 본성을 가진 존재다. 하지만 자기 자리를 찾고 자신에게 꼭 맞는 길을 가는 사람은 마치 그런 세계를 떠나 홀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 편하고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말아야 한다고 많이들 외치지만 그렇게 외치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캐치하는 능력을 다들 갖고 있다.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한 사람은 누구라도 알아본다. 다만 현대 사회에는 그런 사람들을 찾기가 어려워졌을 뿐이다.

내 몸과 마음이 남들보다 약하고, 여리고, 부서지기 쉽다면, 그에 맞게 한도 끝도 없이 자신을 내려놓고 살면 된다. 기가 빨리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스럽다면, 간섭하고 공격하고 질투를 일으키는 사람들 때문에 괴롭다면, 그것은 그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내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 마음 속에 그들과 요만큼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마음, 그것은 내 몸에 맞지 않는 허영일 수 있다. 그들이 나보다 더 낫다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주류 사회에 더 맞는 사람이냐 아니냐의 문제다. 지금 내가 딛고 서 있는 세상은 그들을 위한 자리와 길은 마련해 두었지만 나에게 맞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나에게 맞는 길을 스스로 뚫어가며 살 수밖에 없다. 경쟁적인 성취의 길은 그 길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으며 남들이 좋다는 이득이나 결과물 역시 그 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길은 반드시 존재하는데, 그 길은 곧 내 스스로 만든 길, 내가 추구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내 본연의 본능과 마음에서 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를 안정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길 - 그것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매일 쓰는 글이나 매일 그리는 그림, 매일 만드는 음악이나 영상일 수도 있고 남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내 스스로 하는 일상의 수많은 일과 내가 만들어내는 여러 잡다한 작품들일 수 있다.

이쯤에서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주류 사회의 인정과 보상을 받고 싶다는 작은 욕심일 수 있다. 인간은 결국 호르몬의 지배를 받고, 그 누구도 도파민과 엔돌핀을 비롯한 수많은 쾌락 / 행복과 관련된 신경 전달 물질의 작용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주류 사회의 인정과 보상은 가장 달콤하고 쾌락적인 즐거움을 안겨주며 그 맛에 길들여지면 벗어나기 쉽지 않다. 여기서부터는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 문제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좋아하고 누구나 원하는 것을 어디까지 추구할 것인가, 어느 선에서 욕심을 내려놓을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인류가 존속하는 한 영원히 지속될 고민 주제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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