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류의 가치를 추구하는 타입의 사람들과의 대비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비주류 혹은 예민한, 상처 받기 쉬운 타입, 감정형 등등으로 부르곤 했지만, 그 어떤 것도 이런 타입의 사람들을 정확히 나타내진 못한다. 다만 분명 사회적 성취와 경쟁적인 삶의 방식을 중시하는 주류 가치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부류가 있는 것은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으며, 이런 사람들을 설명하는 다른 말에는 현존형, 내재 가치 추구형 내지 감각 추구형 등이 있겠다. 신경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미래에 대한 기대, 즉 도파민을 추구하고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달려가는 사람들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외적인 평가보다 내적인 평안함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사람들로 볼 수 있다. 아직 과학적으로 구분할 수 있을만큼 뚜렷한 차이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오감 즉 시각 청각 미각 촉각 후각 등으로 받아들인 감각 신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런 감각들의 향연에서 평온함과 행복을 더 크게 느끼는 타입이라는 의미로 '예민한 사람' 이라고 표현해 왔지만, 여전히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나마 '내재 가치 추구형' 이 좀 더 포괄하는 관점에서 적합한 것 같기도 하다.
세계 어느 나라나 공통이겠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경쟁적이고 성취 지향적인 삶의 태도와 결과 중심적인 문화가 심한 편에 속한다. 아무래도 시시각각 안보 위협을 느끼는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상황과 고속 성장으로 인한 급격한 빈부격차 확대 등의 역사 때문이라 이를 개개인의 의지나 사고 방식 탓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말 그대로 '생존 방식'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심한 것이 문제일 뿐 인류 역사 내내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든 경쟁적, 성취 지향적 태도와 결과 중심주의는 그만큼 국가와 개인을 부유하게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삶의 방식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 '내재 가치 추구형', '예민한 감각형'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자존감 저하 문제는 한 번쯤 중요하게 다뤄질 법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 오랫동안 무시당해온 측면이 크다. 그 역시 급속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개개인들의 사정을 챙길만큼 사회적, 문화적 여유가 생기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도 이런 개인들의 문제는 그닥 주목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큰데, 이 또한 어쩌면 영구적으로 성장만을 외치며 달려야 할 대한민국의 운명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회가 바뀌는 것을 기대하기 보다, 자신이 주류의 가치를 추구하는 타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고 서로 공유하는 것이 더 빠를 거란 것이 내 생각이다.
많은 내재 가치 추구형 타입의 사람들이 조직 생활을 어려워한다. 마음에도 없으면서 오로지 이해관계로 인간관계가 이어진다든가 자기 쓸개와 간을 빼는듯한 느낌으로 윗사람 혹은 이득이 될 것 같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낮추고 들어가는 모습, 감정이 없는 사람들처럼 오로지 자리와 이권을 위해 정치질을 하는 모습을 보며 이게 뭔가 싶기도 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그런 사람들을 따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을 수 있다. 실은 따라해봐야 어설플 뿐 아니라 오히려 감당 못할 공격만 받을 뿐이다. 그러면서 다른 능력보다 그런 능력을 더 우선으로 치는 조직에서 마음의 상처도 받고 자존감도 낮아졌을 수 있다. '사회성이 떨어진다' '세상의 이치를 잘 모른다' '인간관계 지능이 낮다' 등등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었을 테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런 조직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 자체가 마음 속에서 자기 능력 이상의 욕심을 품은 것일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런 조직 문화에 아무런 거부감 없는 주류들은 그만큼 현실 감각과 대인 지능이 뛰어난 것인데 그 속에서 살아남아 좋은 평가를 받고 더 높이 올라가고 싶다는 마음이 스트레스를 주고 마음을 괴롭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돈, 권력, 자리를 탐하는 다수 주류의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한 현실적 능력들을 충분히 갖고 있으며, 따라서 내재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그런 것을 얻으려면 그만한 무엇인가를 추가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애초에 내재 가치를 추구하는 타입의 사람이란 것 자체가, 타인의 평가나 인정 없이도 스스로 만족하는 길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와 같다. 그런데 거기다가 돈, 권력, 자리까지 탐한다? 그건 욕심을 넘어 탐욕에 가깝다. 우연히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거라면 모를까, 애초에 자신이 추구할 필요가 없는 것을 탐한 대가가 스트레스로 돌아오는 것에 불과하다.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그런 불편감과 고통, 심한 불안을 느꼈다면, 그 조직이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해도 박차고 나올 용기, 자신에게 더 맞는 곳을 찾아 가겠다는 용기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첫째로 그래도 견딜만 해서이거나, 둘째는 역시나 몸에 맞지도 않는 것을 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자꾸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할까?
이는 한 때 내재적 가치를 추구하며, 즉 자신에게 맞는 것들을 추구하며 살았으나 경쟁적이고 성취 지향적인 사람들 속에서 '한심한' '눈치가 없는' '빠릿빠릿하지 못한' '무능한' 취급을 받았던 기억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대개 그런 취급을 끊임없이 했던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가까운 부모나 친인척,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일 수 있다. 의외로 별 상관 없는 주류 사람들은 내재 가치 추구형, 감각적이거나 예민한 사람들을 그저 신기하게 볼 뿐 굳이 나서서 무시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과거의 기억 때문에 스스로 자기 자신을 무가치하게 평가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될 수 있다. 그런 경우 맘이 동하지도 않는 주류적 가치 - 돈, 권력, 자리 등등 - 를 얻어야 비로소 자기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의 주류는 그런 사람들을 가치 있게 인정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남이 닦아 놓은 길, 남의 인생을 걸을 수는 없다.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전인 교육에서 빠뜨려온 것이 바로 이 부분인데, 바로 사람은 엄연히 서로 다른 기질을 갖고 태어나며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남과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사람으로 타고 났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이 꽤 소수라는 사실도 안다면, 남과 다른 모습으로 살고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도 확신을 잃지 않을 수 있고 남들만큼 현실적인 성과를 내지 못해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