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중독에 대해 그간의 연구들을 살펴보고 나의 상황, 그리고 비슷한 불안을 겪는 분들의 상황에 대해 탐구할수록 이 문제가 인생에 끼치는 악영향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아직도 이에 대한 연구들은 뇌 연구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여러 이론들이 경합중에 있으며, 아직까지는 상당부분 추론과 소위 말하는 뇌피셜을 곁들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긴 하다. 그럼에도 주류 이론 중 하나인 동기-민감화 이론을 바탕으로 이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두는 것은 이와 관련된 문제를 겪는 상황에 꽤 도움이 된다.
'중독' 이라는 말은 매우 부정적으로 들릴 뿐 아니라 마약이나 게임 중독, 알코올 중독처럼 음울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중독에도 단계가 있으며 중독 대상 역시 중독성이 높은 물질이나 행위 외에 생각 중독, 고민 중독, 미래 계획 중독 등 사고 활동 역시 중독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실제로 요즘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중독된 상태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무작정 중독을 부정적으로 보기 보다는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데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중독은 보통 만성 불안과 함께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불안과 중독은 서로를 강화하는 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어 함께 살펴보면 설명력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동기-민감화 이론은 신경과학자인 켄트 베리지 박사가 1980년대부터 연구한 것으로, 그 후 30년간 수많은 후속 연구와 비판 속에서 살아남은 이론이다. 이 이론을 자세히 상술하기 보다는 현실적 적용에 초점을 맞춰 바꿔 보자면, 한마디로 중독 상태란 '어떤 것에 대해 과도하게 원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원하는 만큼 즐길 수는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늘 게임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하루종일 게임 생각만 하고 늘 게임을 하고 싶어 틈만 나면 컴퓨터나 게임기 앞에서 게임을 하지만 막상 게임을 하는 동안은 기대만큼 즐겁지 않아 곧 공허감과 허무감에 빠지게 된다. 공허와 허무감에 빠지는 이유를 동기-민감화 이론에선 원하는 것과 즐기는 상태가 불일치하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여기에 오랫동안 연구된 금단 이론은 공허와 허무의 원인을 일종의 금단 증상으로, 이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뇌 속 보상 회로가 고장나서 끊임없는 괴로움을 일으키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한다. 즉 보통의 평범하고 건강한 마음 상태를 0 이라고 하면, 게임을 하지 않을 때는 -10, 즉 괴로운 상태가 이어지고 게임을 해야 비로소 0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동기-민감화 이론과 금단과 관련된 이론은 서로 완전히 통합되지 않아 아직은 정교한 설명이 어렵지만, 경험적으로 추론 및 이해를 할 수는 있다고 하겠다.
하루종일 일만 생각하는 일 중독자, 섹스만 생각하는 섹스 중독자, 먹을 것만 생각하는 음식 중독자, 자신의 취미 생활에만 몰두하는 취미 중독자는 과연 행복한 상태일까? 중독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결코 그럴 수 없다. 우선, 일, 섹스, 음식, 취미를 과도하게 원하긴 하지만 결코 원하는 만큼 즐길 수 없으니 공허와 허무감에 쉽게 빠지고, 더욱 문제는 그런 것들을 하지 않고 편히 쉬거나 멍때리고 있어야 할 때조차 괴로운 마음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중독 대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뻔히 공허와 허무의 결과가 올 것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중독 대상을 찾는 것을 멈출 수가 없으며, 가만히 있을때 늘 괴롭고 불편하기 때문에 중독 대상에 몰두해야 비로소 안정이 되기 때문이다.
중독이 일어나는 이유엔 여러가지가 있지만,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볼 땐 여러 요인 중에서도 도파민 시스템의 변화가 핵심 축으로 자주 논의된다. 그 외 여러가지 기전도 작용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이 도파민 때문인데, 도파민은 무엇을 강렬하게 원하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치열한 경기에서 이기거나 엄청난 성취감을 느낀 후, 성적인 자극으로 인한 오르가즘을 느끼거나 쾌감이 느껴질만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대중적으로 ‘도파민이 터진다’고 말하지만, 엄밀히는 도파민을 쾌감 그 자체로 보는 설명은 논쟁적이며, 동기·학습·가치 부여의 신호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느끼는 강렬한 쾌감, 즐거움은 우리 몸 속에서 자연 분비되는 마약 유사 물질(엔도카나비노이드, 엔돌핀 등)과 노르에피네프린 등이며 평온함, 만족감, 행복감은 세로토닌이나 옥시토신과 관련이 깊다. 무엇보다 이러한 쾌감, 즐거움, 행복의 감정은 도파민과 달리 뇌의 다양한 부위가 작용하는 통합적인 정신 작용이다. 따라서 어떤 이유에 의해서든 도파민만 과다 분비되면 '원하는 것만 과다하게 많아지는' 상태가 될 뿐 즐거움, 쾌감은 그렇게 펌핑된 '원하는 감정'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가 되며 이것이 곧 중독 상태이다.
그러면 왜 도파민만 과다 분비될까? 여기서부터 다시 또 여러 추정이 들어가는데, 우선 게임이나 섹스, 일의 성취 등등 평상시와 다른 너무 강렬한 쾌감과 즐거움, 행복감을 느낀 후 비슷한 상황을 맞닥 뜨렸을 때, 즉 그 강렬했던 쾌감과 즐거움의 대상을 다시 마주했을 때 도파민이 엄청나게 분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게임에서 엄청난 보상을 받았거나 남녀 사이에서 강한 성적 쾌감을 느꼈을 때, 다시 그 게임을 할 수 있는 상황 혹은 이성을 볼 때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고 결국 그 대상을 강렬히 원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동기-민감화 이론과 다른 중독 이론들이 통합해서 깔끔한 설명을 못하고 있는데, 동기-민감화 이론에서는 도파민에 의한 과활성화 때문에 중독이 일어난다 (즉 원하는 것만 많고 그것을 즐기는 것은 못따른다) 고 보고 다른 이론들에서는 도파민이 자꾸 과활성화되어 도파민에 의한 반응을 전달하는 도파민 수용체들의 활성이 오히려 감소되어 더 많은 도파민을 갈구하는 상태가 중독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느 쪽이든 현실 상황에 필요한 부분만 옮겨 보자면 - 결국 무엇인가의 대상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갈구하고 추구할수록 처음엔 큰 즐거움과 쾌감이 있었지만 나중엔 점점 즐겁지도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그것을 갈구하는 마음만 커지게 된다는 부분이다.
이것은 부정적인 생각 중독, 미래 계획 중독, 끊임없이 고민만 하는 상태 중독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중독은 그 대상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괴로운 고통에도 중독될 수 있다. 바로 이런 메커니즘을 설명할 때 '불안'이 끼어든다. 어째서 부정적인 생각과 고민, 고통에도 중독 되는가? 동물 실험 연구를 통해 볼 때 이는 아마도 우리 몸에서 감정의 증폭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불안에 의해 활성이 증가할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추정 가능하다. 즉 과도한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그 대상이 부정적인 생각이든 고민이든 심지어 신체적 고통이든 무엇이든 중독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부모에게 폭력 등 학대를 받고 자란 사람이 성인이 되어 똑같은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같은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직까지 사람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 또한 완전하지 않으며, 부정적인 생각, 미래 계획, 고민 등등 정신적인 중독의 경우 그 자체로 어느 정도 쾌감을 느끼게 만들 뿐 아니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 그런 느낌에 중독된다는 이론도 있다. 또한 신체적 고통의 경우 고통을 받을 때 뇌 속에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쾌감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데, 이 느낌에 중독된다는 이론 역시 존재한다. 통각을 자극하는 강렬한 매운 음식에 중독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결국 이와 관련된 이론들은 불완전하지만 역시나 현실 적용의 측면에서 추론해 보자면, 불안을 자주 느끼는 상황, 심한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에선 일이든 취미든 부정적인 생각과 고민이든 무엇에든 중독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종합해 볼 때, 현실에서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한 감정이 지속되는 상황에는 무엇인가에 중독되기 쉬운데, 그렇게 중독될수록 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렬한 집착만 커질뿐 막상 그 대상에게 즐거움이나 만족감도 못느끼는, 오히려 공허와 허무가 반복되며 중독 대상이 없는 경우 괴로움이 기본 마음 상태가 되어버릴 수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같은 신경과학적 원리는 다양한 종교와 철학에서 인간의 마음에 대해 다룬 통찰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맞지 않는 인생길을 걸으면 알게 모르게 내 몸과 마음은 끝없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만성 불안에 빠져 영혼이 탈진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 미래에 대한 공상에 집착하게 될 수 있다. 이를테면 더 많은 재산을 일구면 / 더 좋은 직업을 가지면 / 더 높은 자리에 오르면 / 더 완벽한 연인이나 배우자를 얻으면 나의 이 괴로움은 사라질 것이다라는 공상이 그것이다. 결국 현재에 대한 불만은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내 몸과 뇌가 느끼는 끊임없는 스트레스와 불안에서 비롯되는데, 우리 뇌는 불만족의 근본 원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내가 갖지 못한 것 때문에 지금이 불만족스럽다고 귀인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지속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위에서 언급한 불안-중독 기전에 의해 현실의 괴로움을 일시적으로나마 잊게 해주는 중독 대상을 찾게 되고, 그것이 음식이든, 공상이나 부정적 생각, 고민이든, 술이든, 게임이든, 성적 쾌락이든 서서히 그 대상에 중독되게 된다. 여기에 더해 남과 비교하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습관, 혹은 반대로 나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타인을 무시하거나 세상을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사람들에게 독설을 쏟아붓는 것도 중독의 대상이 된다. 그런 부정적 사고는 때로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나 일시적 우월감 같은 보상을 제공해 습관화되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행복에 대한 집착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 이유는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스트레스와 만성 불안을 줄이고 중독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평소 불안, 중독에서 벗어나 안정된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개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목표이지만, 인생에서 즐겁고 만족스러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물론 개인의 노력 외에 운이나 주변 환경, 타고난 기질 등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에 좌우되는 것이 많다는 의미다. 게다가 현대 과학의 여러 연구 결과들은 안정된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면 그 때부터는 매우 사소한 일상들 속에서도 충분히 행복의 감정을 느낄 것들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불안 - 중독의 사이클에 빠지지 않는 것이 삶에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불안-중독 사이클에 빠지지 않은 상태란 결국 평상시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일상에서 잔잔하게 만족과 충만감을 느낄 수 있는 상태를 뜻하며, 이것을 신경과학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한 것이 바로 여태까지 언급한 중독 이론들이다.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은 상태' 라고 하면 어떤 영적 상태 혹은 종교적 몰입에 든 상태를 떠올릴 수 있으나, 이것은 과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설명에 해당한다. 내 인생이 뭔가 잘 풀리지 않는 것 같고, 늘 부족한 것이 많고, 그래서 뭔가를 얻어야만 하거나 남을 끌어 내려야만 할 것 같은 감정에 머물러 있다는 것 자체가 불안 - 중독 사이클에 빠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는 얼마나 짦은 인생을 온전히 만끽하며 적극적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다. 불안 - 중독 사이클에서 빠져나와야 비로소 그런 삶이 시작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불안 - 중독 사이클에 빠져 있으면 애초에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고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에 대한 확신도 가질 수 없다. 그런 것들은 불안에서 빠져나와 안정된 마음 상태가 오랫동안 유지된 상태에서 비로소 떠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