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생 불안과 함께 살았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명상 모임이나 불교 명상 강좌 등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을법한 곳을 찾아다닌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살면서 마주한 여러 문제들과 판단 착오들의 근본 원인이 불안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알게된 것 역시 오래되지 않았다. 그 후 적극적으로 불안에 대해 공부하고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천들을 하면서 내가 내 문제를 똑바로 볼 수 없는 상태 자체가 불안의 특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 나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나의 문제를 회피해 왔던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이것을 밖으로 꺼내는 순간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다고 느껴서였다.
정신건강 문제는 유럽과 미국에서 주로 연구되어왔다. 프로이트를 비롯한 수많은 심리학자, 정신의학자들의 본고장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미국의 경우 마약과 마약류 약물의 중독 문제 때문에라도 이와 관련된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 건강 문제는 결국 뇌 속 회로와 관련된 문제로, 정신적인 고통을 품고 사는 사람들은 뇌를 자극하는 다양한 약물들에 중독되기 쉽다. 이와 관련된 연결 고리를 밝히는 과정에서 불안, 우울 등과 관련된 뇌 회로 기전도 함께 밝혀졌고, 또한 보통의 사람들보다 불안, 우울해지기 쉬운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이 따로 있다는 사실도 함께 밝혀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서구 사회는 일찍부터 정신 건강 문제를 사회적으로 혹은 정책적으로 적극 관리할 방법을 찾았지만, 한국 사회는 이와 관련된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개인들은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쉬쉬하곤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신과에 가면 기록이 남아서 취업에 불이익을 받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이는 개도국에서 급속한 경제 발전만 추구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실용주의만 강조해온 한국 사회의 경향성과 함께, 뿌리깊은 공동체주의 문화로 인해 개인의 정신 건강 문제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탓으로보인다.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선 우울이나 불안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이니 의지를 갖고 생각을 줄여야' 한다거나 '운동을 안해서 그렇다' , '먹고 살기 편하니까 그렇다', '몸을 안움직이고 게을러서 그렇다' 라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한편으로 한국 사회가 우리 뇌의 작동 방식이나 이와 관련된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지식을 거의 다루지 않았던 것을 방증한다. 이로 인해 우울, 불안을 비롯한 각종 정신 건강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꽁꽁 숨긴채 사람들 앞에서는 늘 밝고 명랑하게, 소위 '정상인'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많았다. 또한 이들은 경쟁주의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쉽게 상처를 받으면서도 보통 사람들이 그런 환경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성과를 내는 것을 보면서 모든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 따라서 이 문제는 스스로 의지와 노력으로 고쳐야 할 것이란 생각을 키웠던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나 역시 주류 사회의 속도와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는 늘 이해 불가의 영역이었다. 물론 사회가 경제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특히 우리나라처럼 주변 강대국들 속에서 자원도 없고 땅도 좁은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빠른 속도를 기반으로 한 경쟁주의가 필수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그로 인해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며, 이것은 한국을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들에게도 이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처럼 불안, 우울 등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에겐 한국의 이런 경쟁주의 문화가 견디기 힘든 치명적인 환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기 때문에 이제서야 비로소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오픈하고 이와 관련된 연구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수 년 간 관련 컨텐츠들이 방송이나 소셜 미디어, 책 등의 매체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이런 흐름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현재까지의 모든 연구를 종합해 보면, 아직까지 이와 관련해서 모호한 부분들이 많다. 시각, 미각, 청각 등 여러 감각 자극들을 보통의 사람들보다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일 뿐 아니라 주위 환경 변화를 예리하게 탐지할 수 있는 매우 예민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이런 사람들이 뇌 신경 회로의 피로를 쉽게 겪기 때문에 우울과 불안 등의 정신 문제를 자주 겪는 경향도 있지만, 이렇게 예민한 사람들이 모두 불안이나 우울의 기질을 타고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런 예민한 사람들이 충분히 안전하고 포근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경우 보통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부정적인 감정이나 기분에서 더 빨리 회복할 수 있다는 연구들도 있다. 결국 우울과 불안은 그것을 일으키는 단일 유전자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기질적으로 타고난 특성에 어린 시절의 양육 환경, 그리고 인생에서 마주하는 여러 이벤트들 등 복합적인 요소들의 결과로 보인다.
나는 우울 보다는 불안도가 높은 기질이고, 우울과 불안은 여러 면에서 뇌 회로 메커니즘이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차이도 있으며 증상도 서로 다르므로 엄밀히 말해 우울과 불안을 하나로 묶어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울과 불안 뿐 아니라 ADHD, 공황장애, 그 외 다양한 정신적 문제들은 칼로 무 자르듯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정신 의학 역시 DSM-5 등의 진단 기준을 세워놓긴 했지만 아직까지 현대 과학은 이런 다양한 증상들이 서로 겹치는 메커니즘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나는 주로 불안 문제를 다루겠지만, 결국 우울 등 그 외 다양한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 모두 뇌의 측면에선 모두 공통적인 부분들이 많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예민한' 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고 있지만 용어 사용에 있어서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정서적으로 취약하다' '마음의 갑옷이 얇다' 라는 표현 등등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뭔가 와닿는 단어가 없다. '상처받기 쉬운 예민이들' 정도가 어떨까 하는데 이것 역시 부족하기 때문에 앞으로 바꿀 수도 있겠다.
세상에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불안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대중적으로 관련 컨텐츠를 전달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들 모두는 사실 누구보다 본인 스스로 상처받기 쉬운 예민이들에 속한다. 이렇게 정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금새 알아보는데, 유유상종이라는 말은 바로 이 때 쓰기 적합한 표현이다. 물론 자신은 짐짓 아닌척 하면서 방어적으로 말하거나 오히려 자신이 불안한 사람들을 치유해줄 수 있는, 정반대의 측면에 선 사람인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많다. 소셜 미디어나 책을 통해 불안 치유 방법을 제시하는 사람들 역시 사실은 상처받기 쉬운 예민이들이다. 그렇게 아닌척 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자기 말에 실린 권위가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불안을 쉽게 느끼는 성향은 뚝딱 고칠 수 있는 처방이 있는 것이 아니며 이런 기질을 가진 사람은 평생 이를 다스리고 관리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자기 방어를 하는 것은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안한 사람들은 어딘가에 그 치유 방법이 있을 거라 믿고 이런 컨텐츠들을 과신하는 경우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렇게 '치유 방법'이 있다는 생각 자체가 불안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특성이며, 어딘가에 그런 확실한 방법이 있다고 믿고 따라해 봐야 크게 달라지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보고 실망하기 마련이다.
불안의 기질, 정서적 취약성은 앞서 말했듯 확실히 밝혀진 게 없으며 해당 분야 권위자들이라 해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고 고백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원인 분석 보다는 자신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듯 어린 시절의 좋은 양육 환경, 살면서 겪는 주변 환경 다 중요하지만 실제로 난치성 지병 때문에 만성 불안 상태에 머물 수도 있고 심지어 그냥 모든 외부 환경과 상관 없이 늘 불안을 느끼도록 타고난 사람도 있다. 그 어떤 약으로도 불안이나 우울 등에 별다른 차도가 없는 사람들도 많다. 한편으로 그래서 이같은 정서적 취약성은 긴 시간의 인류 진화 및 적자 생존의 관점에서 뭔가 장점이 있어 남게 된 특성으로 볼 여지도 많다. 누구는 빨간 머리를 갖고 누구는 음악적 재능이 있고 누구는 공부 머리를 타고 나는 것처럼. 따라서 자신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를 마치 떼어내야 할 암덩어리 처럼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의 존재 근거를 구성하는 여러 요인들 중 남보다 심한 불안을 느끼고 예민하다는 점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식단 조절, 격렬한 운동, 스트레칭, 명상 등 모든 활동 뒤엔 머리 속이 맑아지면서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보통의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우울하거나 불안한 사건 사고를 당한 뒤 이같은 활동들을 통해 쉽게 그런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취약한 예민이들은 아무리 운동하고 아무리 명상을 해도 잠깐만 벗어날 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운동이 답이다' '식단 조절이 답이다' '생각을 버려야 한다' '명상이 답이다' 등등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상처만 더 받고 자존감만 낮아질 수 있다. 그런 것들을 해도 크게 나아지는 게 없는 경우, 그게 마치 자신의 게으름 혹은 노력 부족 탓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보통의 사람들이 우울하거나 불안하다가도 운동 만으로 쉽게 멀쩡해지는 모습을 보면 더더욱 자존감이 낮아질 수 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쉽게 극복하는데 나는 안될까?' 라는 착각에 사로잡혀서.
앞서 불안하거나 우울한 사람들은 서로를 쉽게 알아본다고 했다. 무의식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실은 이렇게 정신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나타내는 공통적인 모습이 하나 있다. 바로 '무엇인가에 사로잡히기 쉬운' 특성이다. 이것은 불안 - 중독 메커니즘에 의한 모습인데, 이는 늘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 줄 탈출구가 어딘가에 있을 거란 믿음에 빠지기 쉬워서다.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것은 없다. 운동, 식단, 명상, 생각 줄이고 움직이기, 정신과 약 혹은 심리 치료 등등 모든 방법들은 불안과 우울을 많인 완화 시켜주지만, 그 어떤 것도 지속되는 효과를 내는 것은 없다.
타고나기를 마음이 안정된 사람들은 인생과 세상 그 어떤 것도 불확실한 것들 투성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과 예측 못할 일들로 가득하며, 아무리 노력해도 그 어떤 것도 통제할 수 없다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하루하루 충실히 산다. 이는 한편으로 수많은 명상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목표 지점과 같은데, 뇌과학적 관점에서도 설명이 가능한 부분이다. 즉 이것은 철학적인 이론 외에 말 지극히 생물학적인 원리에 의해서도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마음이 안정되어 있으면 특정 대상에 사로잡혀 있기 보다 관심이 외부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억지로 외부에 관심을 둔다고 마음이 안정될 거라고 보는 것은 인과관계 오류다. 마찬가지로 원체 마음이 편안한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나 행동 패턴을 따라한다고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일 수 있다.
이쯤에서 취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선택의 지점이 발생한다. 불안, 우울 등에서 벗어나 기질적으로 안정된 사람들을 롤모델로 삼아 그것을 목표로 살 것인가, 아니면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꾸준히 인지 하면서도 그대로 계속 마음을 관리하며 살 것인가. 전자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바로 수행을 하는 사람들, 불교나 기독교 등 종교의 길을 걷는 사람들, 중이 되거나 세속적 삶을 버리고 지속적인 평안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현실을 살면서 그와 같은 마음 상태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속세를 벗어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스님이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면 속세로 내려와서 다른 사람들처럼 치열한 일상 생활과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 되지만 그러지 않는 데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길은, 그냥 꾸준히 자기 마음을 관리하면서 무엇인가에 사로잡히더라도 그 사로잡힌 대상을 추구하며 사는 길이다.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나는 우선 후자를 선택했는데, 내가 사로잡힌 대상 자체가 바로 인간의 마음 원리, 특히 불안 그 자체다. 불안한 사람은 불안을 연구하면 안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그 자체로 생각 중독 회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불안을 대상화하고, 불안과 관련된 컨텐츠들을 만들거나 글을 쓰고, 관련 활동들을 하는 것에서 보람을 찾는 것은 어떨까 하는 쪽으로 방향을 찾고 있다. 어찌 되었든 무엇에 사로잡히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면, 몸이 반응하고 가만히 있어도 관심이 쏠리는 불안 그 본체를 대상으로 삼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다.
사람들은, 그리고 사회는 불안과 우울 같은 주제로 이야기 하거나 이런 취약한 예민이들의 진지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주제의 이야기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고, 사회 발전을 후퇴시키며, 직장과 같은 조직을 뒤쳐지게 만든다고 여긴다. 일단 취약한 예민이들의 말은 자꾸 반복되고 (계속 뭔가에 사로 잡혀 있으므로) 답이나 결론이 없어서 평범한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 수 있다. 나 역시 그동안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꺼내면 늘 분위기가 축 가라앉는 것을 보거나 생각을 줄이라는 핀잔을 많이 들어왔기에 일상에서 이런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정신 건강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정책 등의 측면으로 접근하거나 관련 연구를 지원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앞으로 이와 관련된 개념이나 이론적 지식들도 많이 보급되고 무엇보다 우울, 불안과 같은 상태에 대한 인식이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게 될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 과정에 조금이라도 어떤 역할이나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축 처지는 이야기, 재미 없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꾸준히 이와 관련된 글을 쓰면서 이에 대해 좀 더 깊게 탐구해보고 뭐든 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