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여행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베트남 쌀국수나 반미, 베트남 전통 복장인 아오자이와 삿갓형 모자(논) 등이 있겠지만, 아는 사람은 아는(?) 명물이 하나 더 있으니 그게 바로 베트남 이발소 되겠다. 일부 퇴폐적인 이발소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지만, 베트남 이발소는 과거 프랑스 식민 시대의 서구식 이발소와 베트남의 전통 귀청소 문화가 결합해 독특한 형태로 발전한 이발소라고 한다. 한국 관광객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베트남 여러 도시에 한국인들 대상으로 한 이발소들이 많이 생겼지만, 최근 베트남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식 이발소나 개인 브랜드를 내세운 현지 이발소들이 저렴한 가격에 수준 높고 세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며 내외국인 모두에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 이발소의 독특한 서비스는 역시나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귀청소' 서비스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워 귀청소를 받았을 때의 그 포근하면서도 짜릿 찌릿한 느낌(?)에 많은 남녀 여행자들이 베트남 여행 필수 코스로 이발소 귀청소 서비스를 꼽고 있다. 어떤 이발소는 심지어 이발을 안하고 마사지와 귀청소 등등의 서비스만 제공하기도 하며, 이발 전문 이발소들 역시 대부분 이발을 건너뛰고 마사지나 귀청소 등등만 따로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관광객들 혹은 현지인들 사이에서 꽤 평이 좋은 이발소들을 찾아가보면 이같은 서비스를 해주는 분들이 이런저런 다양한 도구들을 챙겨 전문가 포스를 풍기며 정성껏 귀를 파준다. 헨드 랜턴을 켜고 마치 동굴을 탐험하는 탐사원처럼 여러 기구들을 이용해 진지한 표정으로 귀 속을 건드리는 모습을 보면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도 몸에 전율이 오르기도 한다.
귀에는 예민한 부분이 있어 잘못 건드리면 꽤 아플 수 있는데, 이 분들은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 우선 소리굽쇠로 미묘한 진동을 울려 마음을 안정시킨 후 이런저런 기구들을 깊숙이 집어 넣어 여기저기 헤집는데, 기구들이 왔다갔다 하며 귀 속 이 곳 저 곳을 건드릴때마다 아슬아슬한 긴장과 쾌감이 반복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느낌에 취해 유튜버들 중엔 베트남 도시 전역을 다니며 귀파기 영상을 찍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귀파기 문화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중국을 비롯해 꽤 많은 아시아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발달한 문화인데, 베트남 이발소는 낮은 인건비와 섬세한 손기술, 더운 나라 특유의 청결 문화가 결합해서 이를 상업화 하는데 성공한 듯 하다. 나도 몇 번 귀청소를 받아보니 이제 관련 영상만 봐도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다시 온 몸에 기분좋은 전율이 올랑말랑 하는 것 같다.
그러면 왜 귀청소가 이런 짜릿하고 기분좋은 느낌을 선사할까? 실제로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일 때 활성화되는 부교감신경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미주신경인데, 미주신경은 우리 몸에서 호흡, 심장 박동, 소화 조절 등의 조절에 관여하는 신경이다. 이 미주신경은 뇌에서 몸 깊숙한 곳으로 뻗어 있는데, 깊은 호흡을 하거나 명상을 할 때 활성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미주 신경의 일부 가지가 피부 가장 가까운 곳을 지나는 곳이 바로 목과 귀이다. 귀 여기저기 자극할 때 매우 민감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와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아직은 연구 단계이지만 귀 미주신경 부위를 전기 자극 함으로써 마음을 편안하게 완화시키는 치료가 있다. 사람은 휴식 상태에서 뇌의 앞 부분인 전두엽에서 델타파라는 뇌파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귀 미주신경을 전기 자극했을때 전두엽에서 여러 저주파 뇌파가 관찰되는데 특히 스트레스와 통증 감소, 불안 감소를 추정할 수 있는 델타파가 나오는 것이 관찰되었다는 연구가 있다. 또한 염증성 장질환을 유도한 쥐에서 귀 전기 자극을 통해 장과 뇌 염증을 감소시켰다는 연구도 있다. 현재 해당 치료가 표준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같은 치료로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시켜 전신 염증을 억제하고 불안을 감소시키는 세로토닌 등의 호르몬 분비를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중이라고 한다. 왜 하필 미주신경이 귀 근처에 가까이 지날까에 대해선, 진화 생물학자들은 우리의 옛 조상이 바다에서 나왔고 귀는 아가미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그 이유를 추정하고 있다. 아가미가 귀로 변하는 동안 해당 부위를 지나는 미주 신경의 일부가 남았을 거라는 이야기다.
평소 자극받지 않는 감각 기관을 가끔씩 자극해줘야 해당 감각과 관련된 뇌 부위가 활성화되면서 뇌 여기저기를 일깨우는 효과가 분명 있는 것 같다. 안전한 도시 생활이 지속되면 권태로움에 빠질 수 있는데, 가끔씩 원시적 공포 상황을 마주하며 잠들어 있던 관련 뇌 부위를 활성화 시켜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 중 야생 지역 캠핑이나 다소 거친 자연 환경으로 탐험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분명 뇌의 모든 부위를 사용하도록 태어났고 따라서 어느 한 부위든 오랫동안 자극이 감소하면 그만큼 뇌가 무기력해지거나 균형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이런 면에서 귀를 자극하는 것은 요가와 닮은 점이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요가할 때 명상을 하면서 나의 섬세한 감각을 일깨우는 느낌을 받는다든지, 평소 전혀 사용할 일 없는 근육들을 여기저기 자극하고 스트레칭 함으로써 관련 근육과 연결된 신경들을 일깨운다든지 등등. 알고보면 요가도 근육 스트레칭을 통해 미주신경이 지나는 부위를 자극하게 되는데, 요가 동작을 하나씩 할 때마다 몸의 어딘가가 일깨워지면서 시원함을 느끼고 그 느낌이 때로 머리로 혈액 순환이 원활히 되는 느낌으로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언젠가부터 '일깨우기' 라는 단어가 머리에 쏙 박히기 시작했다. 귀청소든 요가든, 야생의 자연 탐험이든, 평소 침묵하고 있는 감각 기관과 뇌부위를 계속해서 자극하고 일깨워주는 것이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무척 도움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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