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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CARE

중심 상업지구 대형 치과들의 진실

터질 일이 터졌다. 뒤늦게

최근 강남의 한 대형 치과에서 큰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8개월 사이에 환자 두 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아직 언론에서도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업계 종사자들, 특히 치과의사들 대부분은 터질 일이 터졌다는 반응이다. 치과 커뮤니티에서는 혹시 모를 법적 문제 때문에 다들 글로 남기지는 않지만, 오프라인에서는 관련 의견을 활발히 주고받는 것으로 보인다. 해당 치과뿐 아니라 일부 대형 치과들 중 위험한 방식으로 무리하게 과잉 진료를 하는 곳이 많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던 터라 그다지 놀랍지 않다.

이런 일부 대형 치과들의 문제는 과거에도 여러 번 불거졌지만 크게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 이유가 해당 대표가 돈과 인맥으로 언론이나 포털을 막았다는 식의 음모론적인 것은 아니다. 치과계에 그럴 만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단순히 언론이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이다. 과거 특정 대형 교정 치과의 먹튀 사건이 있었지만, 교정은 미용의 영역이니 그런 진료를 굳이 받은 환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의료에서 작동하는 지식 비대칭 문제의 폐해를 고려하면, 치료 내용의 경중을 떠나 언젠가 한 번은 제대로 손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환자 입장에서 최적의 치과 진료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따져보자. 치과의사의 양심이라든가 환자를 위하는 책임감 같은 모호한 기준은 제쳐두고, 오로지 경제적·법적 관점과 치과의사와 환자 사이의 권력 문제로만 접근해 보자. 다시 말해 치과의사에게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면서도 성실히 진료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법적 장치와 견제 장치가 작동하는 상황이란 어떤 구조인지를 먼저 따져본다는 뜻이다. 의료 제도가 대개 그렇듯 여전히 해결해야 할 모순이 많지만, 일단 지금 현실에서의 최적 상태를 기준으로 살펴보겠다.

논의 범위는 치과의 주요 질환 치료 — 충치 치료, 신경 치료, 보철 수복, 임플란트, 구강외과 치료, 예방 치료 — 로 한정하겠다. 교정과 양악수술, 턱관절 진료는 성격이 달라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치과의 주요 질환은 사실상 동네 치과만으로 거의 대부분 해결된다. 병원급 치과에서만 할 수 있는 치료가 애초에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상태가 심각하거나 치료가 까다로운 경우, 구강암 같은 중증 질환은 개원가에서 손을 댈 수 없다. 그러나 그런 환자는 매우 적고,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바로 치과대학병원이다.

치과대학병원은 보존과, 보철과, 치주과 등 여러 과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 치과도 의과처럼 전문과가 세분화된 곳에서 치료를 더 잘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치과대학병원이 과를 나눈 이유는 전국에서 각 과별 치료가 필요한 난해한 환자들이 오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교육과 학문 발전이란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이유가 크다. 그곳에서 각 과 전문의를 딴 치과의사들도 개원가로 나오면 결국 똑같이 주요 치과 질환을 두루 치료하게 되는데, 이는 치과 치료 자체의 특성 때문이다. 치과 치료는 애초에 전체적인 구강 기능 회복에 목적이 있다. 개별 치아나 잇몸의 특정 상태만 국소적으로 낫게하는 것은 애초부터 치과 치료의 목적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과별로 나누어 진료하는 중심 상업지구의 일부 대형 치과는 동네 치과가 못하는 진료를 대학병원 수준으로 해내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일부 대형 치과가 그렇게 광고한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앞서 말했듯 대학병원이 과를 나눈 것은 난치성 질환 치료와 교육, 학문 발전을 위해서이고, 각 과를 평생 한 분야만 연구한 교수가 맡고 있기에 그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 로컬과 대학병원이 나뉜 것은 마치 산업계와 학계가 서로 다른 동기와 목표를 갖고 움직이는 것과 같다. 그런 광고와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일부 대형 치과는, 사실은 제조업의 분업화 논리, 즉 생산성 향상의 원리와 무엇보다 환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크다. 또 한편으로는 로컬에 나온지 오래되지 않아 경험이 부족한, 그래서 일부 특정 과의 진료밖에 보지 못하는 치과의사들을 고용해서 돌려야 한다는 필요 때문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환자에겐 최악의 조합을 굳이 잘 수행해내기 위한 시스템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점이 잘 이해되지 않는 이유는 치과 치료의 특성 때문이다. 치과는 진단부터 전체 치료 과정까지 한 사람의 주도로 이루어질 때 환자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최적의 결과가 나온다. 예를 들어 이가 없는 부위에 임플란트를 심고 그 위에 보철을 올리는 치료와, 맞물리는 반대편 치아의 충치 및 보철 치료를 함께 한다고 해보자. 이를 위해서는 처음 진단을 세우는 사람이 이 치료로 어떤 기능을 회복시킬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한다. 치아 치료든 임플란트 치료든 개별 치아를 손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보철들이 제대로 기능해야 비로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단은 한 사람이 내리고, 환자는 외과나 치주과로 가서 임플란트를 심고, 보철과에 가서 치아를 올리고, 보존과로 가서 충치를 치료하는 식으로 나뉘면, 뒤로 갈수록 이 치료를 왜 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갖거나 책임지는 사람이 사라진다. 계획을 세운 사람은 최적의 결과를 염두에 두고 임플란트를 심을 위치와 보철의 모양, 높이를 잡았을 텐데, 손이 바뀔수록 그 계획은 의미를 잃는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치료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사람 몸에는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치료하는 과정에서 치아나 잇몸이 뜻대로 반응하지 않는다든가, 전신질환이 있어 치료에 제대로 반응이 안되거나, 국소적인 근육 문제나 환자 특성, 연령과 복용중인 약물 등등 때문에 예상과 다르게 몸이 반응할 수도 있다. 따라서 치료 과정에서 무언가 어긋나면 처음 계획을 세운 사람이 다시 수정해 환자를 설득하고 다음 방안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중간에 다른 사람이 나누어 치료하면 그 흐름이 끊긴다. 무엇보다 책임질 사람이 없어진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정말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들도 알아차려서 그런 대형 치과는 환자가 끊겨야 하지 않을까. 요즘 환자들은 정보에 밝은데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치과 치료의 특성에서 오는 한계가 있다. 우선 모든 치료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의 치료는 별다른 문제 없이 끝난다. 물론 그중에도 더 나은 치료가 가능했던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치아는 한 번 임플란트를 심고 보철을 만들고 나면 그 결과를 다른 것과 비교하기 어려워진다. 이미 그 자리에 보철이 올라가 있으니 빼서 다른 것으로 바꿔 비교해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료 후에 여러 불편을 호소해도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설득당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 치과들이 상담실장을 여럿 두고 컴플레인을 처리하는 것도 이 지점에서다.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별문제 없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치료도 사실은 불필요한 치료들이 섞여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치료가 끝난 이상 그것이 필요했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방법은 영원히 사라진다. 치과 치료의 문제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치과는 인건비와 재료비, 시설 투자비가 많이 드는 업종이다. 애초에 중심 상업지구에서 대형으로 운영하기에는 버거운 구조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런 대형 치과들은 왜 굳이 그런 자리에 문을 열었을까. 여기에 자본의 논리가 들어간다. 이것을 의료가 아니라 제조업으로 보면, 오히려 꽤 괜찮은 사업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환자는 마케팅으로 데려온다. 어떤 제조업도 광고 없이는 물건을 팔기 어렵고, 이는 신약을 파는 제약회사나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같은 논리를 치과에 적용하면 그만이다. 다만 환자를 모으는 데 마케팅비가 꽤 많이 든다. 더 좋은 업체, 즉 환자를 더 잘 데려오는 업체를 쓸수록 비용은 올라간다.

환자를 설득해 치료를 받게 하고 더 많은 결제를 유도하는 상담실장, 회사로 치면 영업 인력도 많이 필요하다. 이들은 마케팅으로 모인 환자가 어떻게든 치료를 받고 비용을 내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컴플레인을 처리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별도의 고객 응대 부서를 둘 만한 규모가 아니니, 그 역할까지 상담실장이 겸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전국에서 데려온 많은 환자를 한꺼번에 치료해야 하므로 의료진뿐 아니라 치과위생사 등 직원도 많이 뽑는다. 치과는 전문 인력을 고용하는 만큼 인건비가 많이 드는 사업이다. 여기에 중심 상업지구라면 임대료가 상당하다. 매달 나가는 고정비가 애초에 크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일반 회사는 주식회사이므로 손해가 나도 대표가 직접 타격을 입지는 않고, 노동관계법이 적용되어 함부로 직원을 해고하기도 어렵다. 반면 치과는 이런 면에서 사각지대에 가깝다. 우선 대표가 단 한 달의 손해도 감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대표의 인격 문제라기보다 개인이 무한책임을 지는 구조에서 오는 한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는 법인과 주식회사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치과는 대표 혼자 손실을 감당해야 하므로, 매출과 수입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아랫사람을 압박하게 된다. 고용 자체가 불안정하니 실장도 직원도 의료진도 그 압력을 무시하기 어렵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길은 결국 과잉 진료밖에 남지 않는다. 마케팅비를 들여 데려온 환자가 들어온 순간부터, 어떻게든 치료할 부위를 찾아내야 한다. 없으면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서 과잉 진단이 이루어지고, 이번 달 매출을 채우기 위해 하루 만에 무리하게 치료를 밀어붙이게 된다. 상담실장을 비롯한 직원과 의료진이 매출 인센티브를 받는 구조라면, 거절을 잘 못하거나 귀가 얇은 환자는 자연스럽게 무리한 지출을 하게 된다. 근거 없는 이야기로 겁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곧 이를 뽑게 된다는 식의 도시 괴담같은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도 한다.

이런 시스템을 견디지 못해 그만두는 의료진과 직원도 많다. 그러면 장기 치료를 맡았던 담당자가 바뀌고, 책임도 함께 사라진다. 중간에 치료 계획이 바뀌어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해도 상담실장이 설득해 넘기면 그만이다. 그러다 보니 대형 치과에는 설득당하기 쉬운 환자와, 그런 시스템 안에서도 더 많은 인센티브를 위해 버티는 인력만 남는 악순환이 생긴다. 시간이 갈수록 중심 상업지구의 치과 시장은 레몬 시장을 닮아간다.

그러면 초점을 동네 소규모 치과로 옮겨보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동네 치과가 대형 치과보다 못할 것 같아도 구조적으로는 오히려 그 반대인 면이 있다. 앞서 말했듯 치과 치료는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리할 때 제대로 이루어지는 분야다.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환자를 봐 온 치과의사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동네 치과의사가 더 똑똑하고 성실해서가 아니다. 같은 치과의사라도 대형 치과를 전전할 때보다 한 곳에서 오래 일할 때 실력이 쌓이기 쉬운 구조라는 뜻이다.

게다가 동네 치과는 임대료 부담이 작다. 리스크를 꺼리는 성향의 치과의사가 동네 치과에 모이는 면도 있지만, 경쟁 때문에라도 임대료가 낮은 구역을 찾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1층의 작은 약국보다 그 위층의 넓은 치과가 임대료는 오히려 낮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동네 치과는 복잡하게 운영할 필요가 없어 직원 수도 적고 재료비도 덜 든다. 무리해서 진료하지 않아도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라는 뜻이다. 다른 많은 서비스 업종은 규모를 작게 하면 규모의 경제에서 밀려 매출 대비 수익률이 낮아지는 경우가 많지만, 치과를 비롯한 상당수 의료 업종은 그 반대인 경우도 꽤 많다.

물론 동네 작은 치과도 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동네 작은 치과의사들은 자기 방식이 굳기 쉬운데, 한자리에서 오래 하면 익숙한 환자, 그 동네의 특정 환자만 오랫동안 보는 경우가 많다. 활발하게 학계나 세미나 활동을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특정 영역에서는 실력이 쇠퇴할 수 있다. 그런 치과에 조금 특수한 케이스의 환자가 가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려워진다. 다만 이런 문제는 치과의사들도 큰 문제로 여기고 있어 점점 더 많은 치과의사들이 적극적으로 다양한 진료를 접하기 위해 휴일에도 열심히 세미나와 학계를 찾는다. 무엇보다, 대형 치과의 치과의사들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대학병원이 아닌 이상 어차피 로컬에서 치과를 찾는 환자들은 크게 다르지 않기도 하다.

경쟁이 심한 지금 상황에서 소규모 동네 치과는 환자에 대해 오히려 약자에 가깝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 과잉 진료를 한다는 소문이 한 번 돌면 곧바로 타격을 입는다. 1인 대표에 직원도 적으니 애초에 무리한 진료를 벌이기 어렵다. 과하게 진단해 무리하게 치료했다가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환자가 직접 찾아와 항의하는 상황을 감당해야 한다. 결국 동네 치과 원장이 조심하는 것은 특별히 양심적이어서라기보다, 환자에게 견제받기 쉬운 위치에 있다는 의식 때문인 면이 크다.

반면 중심 상업지구의 대형 치과는 자본이 있으니 문제가 생긴 환자가 항의해도 법적으로든 금전적으로든 방할할 여력이 크다. 그래서 문제가 없어 보이는 것뿐이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대부분의 사례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애초에 중심 상업지구의 대형 치과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감당하는 성향이 크다. 과연 환자의 질환을 치료하는 데 있어 리스크를 크게 감당하는 성향이 더 도움이 될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애초에 '나'라는 환자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평균은 큰 의미가 없다. 어떤 치과가 대부분의 치료를 무난히 해내지만 낮은 확률로 큰 문제나 과잉 진료가 발생하고, 그런 일이 생겼을 때 환자가 약자라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면, 그곳은 좋은 선택일까. 아니면 문제가 생겼을 때 항의가 실제로 통하는 규모의 치과가 나은 선택일까. 많은 사람이 머리로는 후자를 알면서도 막연히 전자가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의료가 오랫동안 전문가주의와 권위주의를 함께 유지해 왔기 때문에, 권위를 곧 신뢰로 여기는 편견이 굳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진보한 사회일수록 구속력이 약한 감정이나 신념, 책임감이나 양심 같은 것에 덜 기대고 법과 제도, 시스템을 발전시킨다. 예측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불필요한 피해를 줄이고 더 많은 사람이 예상 가능한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치과 분야는 여전히 법적·제도적 장치가 미비하고 기술적 한계도 있어 환자가 피해를 보기 쉽다. 다만 지금 현실에서도 구조적으로 어느 쪽이 확률적으로 나은 선택인지 판단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견제하기 어려운 치과의사의 속마음에 기대기보다, 그 치과의사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REFERENCES

https://www.mt.co.kr/society/2026/08/14/2026081420035593323
https://www.khan.co.kr/article/20181006151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