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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우리 마음 속 어린아이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다

2019년 미스 USA 우승자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체슬리 크리스트는 에미상 후보에 오른 방송 기자였고, MBA와 법학 학위를 가진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활발히 활동하던 그녀는 2022년 서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주디스 조셉은 책 『고기능 우울증』에서 그녀가 완벽주의에서 비롯된 고기능 우울증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정신건강 문제는 다른 질환과 달리 경계가 모호하고, 임상에서 사용하는 DSM-5 같은 진단 기준 역시 수많은 학자와 임상가에게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아직 뇌의 작동 원리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고 살아 있는 사람의 뇌를 정밀하게 관찰할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한계다. 저자는 고기능 우울증이 어린 시절의 불우한 환경이나 살면서 겪은 여러 트라우마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다만 저자 역시 고기능 우울증이 아직 정식 진단명이 아니고 추측 단계에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학대하기 좋은 환경에 살고 있다. 예전에는 동네에서 춤을 좀 춘다 싶으면 "저 친구 춤꾼이야"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은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전국구, 혹은 세계적인 실력을 가진 또래가 곧바로 비교 대상이 된다. 평생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한정되어 있고 한번 헤어진 사람은 다시 보기 어려웠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지구 반대편에 사는 누군가와 나를 견주는 일이 너무 쉬워졌다.

여기에 어린 시절부터 작은 상처를 겪어온 사람이라면 그런 환경에서 더 쉽게 침울해진다. 마음이 단단하지 않으니 세상의 잣대 — 돈, 외모, 권력, 명예, 영향력 — 를 내면화해 자신과 타인을 재는 기준으로 삼게 되는데, 문제는 그런 잣대로는 누구도 합격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비교 대상도 함께 올라가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저마다 어린아이가 산다. 한동안은 그 아이를 억누르고 나이에 걸맞게 사는 것이 어른스러운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마음속 어린아이는 우리가 근원적으로 원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걸음마처럼 당연한 과제를 해냈을 때조차 부모의 기쁜 얼굴을 온몸으로 받고 싶어 하는 마음, 작은 성취에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그것이다. 그럴 때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얻는다. 반대로 그것이 번번이 무시당하면 아이의 마음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처가 쌓인다.

그런데 지금 시대에는 아무리 애써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기가 어렵다. 아이도 어른도 마찬가지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위에 가만히 서 있는 기분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세상이 향하는 방향과 내가 품은 욕망이 서로 어긋날 때 나타난다.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성취를 강하게 원하는 사람들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그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덕분에 모두가 혜택을 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욕망이 크지 않고 자기만의 가치를 좇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지금의 환경에서 쉽게 소외되고 무기력해질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세계 안에서 산다. 그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남들은 끝내 다 알 수 없다. 내 세계가 주류와 겹친다면 운이 좋은 경우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그것을 버리는 일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나를 부정하는 잣대를 손에 쥐고 있으면, 그 잣대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까지 평가하게 된다. 사람들은 상대가 어떤 자를 들고 있는지 대체로 알아본다. 그래서 결국 나와 함께할 수 있었던 사람들마저 떠난다. 내 세계를 포기하면 나 스스로만 잃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들까지 잃는다.

짧은 인생에서 모든 사람과 함께 갈 수는 없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잘 살아내기도 어렵다. 흔히 말하는 '나로 산다'는 말은 타고난 나를 인정하고 내 안의 욕망을 스스로 인정하며 산다는 뜻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밝히고 인정해달라고 해봐야 사회는 저 나름의 잣대로 무심히 평가할 뿐이다.

체슬리 크리스트가 무엇을 원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것은 그녀만의 세계에 속한 일이고, 밖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누가 보아도 충분해 보이는 그녀의 성취가, 그 사람을 충분히 즐겁고 살아있게 만들진 못했을 거라고.

스스로 만족하는 느낌, 살아 있다는 느낌은 내가 추구하도록 타고난 욕망과 관련이 깊다. 내가 아닌 것을 성취해 봐야 공허감만 느껴질 뿐이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아주 작게라도 계속할 수 있는 여유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REFERENCES

주디스 조셉. 『고기능 우울증』. 문선진 옮김. 포레스트북스, 2025.